원작을 읽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 불만이 많은 것을 보고 언제 한 번 읽어야지 싶다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겟.


처음에 몇 장을 읽고, 그리고 영화에서 떠올랐던 이미지들 덕분에 그냥 한국판 '롤리타'인 줄로만 알았다.


은교를 묘사하는 글들이 너무 예뻐 필사나 할까 하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이 소설 '은교' 라는 작품은 단순히 두 남자의 한 미성년자에 대한 사랑이 주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출퇴근 길에 집중해서 읽어 내려갔다.


이적요와 서지우에게 은교는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한 작가가 어쩌면 이렇게 인물들마다 (Q변호사, 이적요, 서지우) 다른 필체로 써내려가는지.


시적 감수성과 감정이 충만한 이적요의 노트, 불안과 무뚝뚝함이 넘쳐나는 서지우의 노트, 객관적 입장에서 난감해하는 Q변호사의 일화.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는 은교 역시 다 다름이 아주 놀라웠다.


어쩌면 이적요와 서지우의 사랑 (당연히 이성간에 느끼는 국소적 의미의 사랑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는 광의의 사랑) 사이에


은교가 불씨를 당겼던게다.


영화 은교의 캐스팅 부터 끝내 절제되지 못한 자극적인 장면 연출들 때문에 원작 소설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이 많이 묻혔구나 싶다.


- 원제와 비교해보니 제목이 많이 의역되어 있었다. 폴 오스터의 문체와 그가 이 자서전에서 드러낸 성격을 고려한다면 역시나 다소 과하게 의역되어 있다. 딱히 다른 제목을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늘 그렇듯 대안 없는 딴지 걸기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 알라딘 중고 서적에서 폴 오스터의 책이 궁금해 업어왔는데, 뜻밖에도 자서전이었다. 초중반까지만 해도 너무 드라마틱한 삶과 화자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확고해 소설인줄로만 알았다.


A: 오늘은 굉장한 날이요. 대단히 중요한 날이지.


B: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하지만 하루하루가 다 굉장하고 중요해. 남아있는 모든 날들의 새로운 시작이지.


- 황정은 '상류엔 맹금류'

  숨이 턱 막혀오는 가난을 함께 이겨내가는 '제희'의 가족을 바라보는 내 심정은 주인공의 그것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제희'만큼 힘들지 않은 환경 속에 '제희' 만큼이나 부담을 느낀 나는 지긋지긋한 가난과의 쉐도우 복싱 끝에 미래를 낙관하지 못하는 비관주의자가 되었다. 이 단편의 화자와 마찬가지로 ㅡ 혹은 그와는 반대로ㅡ 나는 도망쳤고, 지금은 어쩌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품에 안고 살아가고 있다.


- 조해진 ' 빛의 호위'

그러니까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반장, 네가 준 카메라가 날 이미 살린 적이 있다는 걸 너는 기억할 필요가 있어. (64p)

세상에는 진실 이외의 것보다 더 질실에 가까운 것이 있다. (65p)


- 윤이형의 '쿤의 여행' 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 '창 너머 겨울'은 화자의 곁에 붙어 보며 흥미롭게 읽었다.


- '이상한 정열'과 '산책' 도 그리 와닿지는 않았다.


-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는 한 곳에 묶여 살아가는 화자들의 모습 때문에 인상깊게 읽었다. 어쩌면 꿈이라는 허영을 쫓는다는 명목하에 많은 소중한 것들을 놓치며 사는 것은 아닐까.


- 전체적으로 젊은 이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생생하게 전달한 작품들이 많았다. 중년의 이야기나 결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들에 크게 감흥이 없는 것은 내가 어려서인지 작가가 젊어서인지 모르겠다.


-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연장을 두 번이나 했음에도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사진을 묘사한 글인데, 그 묘사가 치밀한 건 알겠으나 정작 사진이 없어 집중하기 어려웠다. 많은 수사들이 지식을 필요로 해서 아는 것이 없는 나느 ㄴ그 묘사들을 온전히 다 이해하기 힘든 점도 있었다.


- 이 책에서는 치밀한 묘사를 위한 글의 호흡 정도 건져갈 수 있겠다 싶었다.


- 책에 적응이 조금 되고 난 후반부에서는 글들이 참 따뜻하다 느꼈다. 인상 깊었던 편들은 전구 그림을 그린 화가 이야기, 식당 테이블, 오랜 친구인 명성에 관심없는 화가의 이야기 정도가 있었다.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 중 가장 좋은 책이다.

현재의 행복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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