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에 쓰여진 작품이 이렇게나 세련됐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전후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상과 어지러운 사회를 살아가는 생활상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상세하고 적나라한 묘사는 무진의 모습은 물론 도착했을 때의 화자의 심리 상태를 피부까지 전해준다.

묘사의 디테일함은 하루키 저리가라 할 판이고, 어쩐지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이라는 작품 생각도 난다.

한국 문학을 등한시 했던 스스로를 반성하게 해준 책.

많은 소설가들이 필력을 연마하기 위해 무진기행을 필사한단 얘기를 들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할 것 같다.

무진기행을 언젠가 꼭 한 번 이상 필사해야겠다.


작가의 말이 인상깊어 남긴다.

소설이란 추체험의 기록,

있을 수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도식,

구제 받지 못한 상태에 대한 연민,

모순에 대한 예민한 반응,

혼란한 삶의 모습 그 자체.

나는 판단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겠다.

그것은 하느님이 하실 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의미 없는 삶에 

의미의 조명을 비춰 보는 일일 뿐.



무진기행

저자
김승옥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7-08-0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한국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준 첫 한글세대 소설가 김승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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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드 보통
알랭 드 보통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프랑스 작가인 줄 알았으나, 스위스 출신의 영국 작가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명으로 인정되고 있다. 데뷔작은 1993년에 출판한 소설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로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은 건축에서부터 사람의 욕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사람의 심리와 결부시켜 설명한다. 특유의 지적인 서술과 위트로 인기가 많은 것 같은데 정작 나는 한 편도 읽어본 적은 없었다.

지식인의 서재에서 처음 만난 알랭 드 보통

베스트 셀러 목록에서 수없이 봤던 이름이지만 알랭 드 보통의 작품들에 처음으로 호기심을 느끼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네이버의 컨텐츠인 ‘지식인의 서재 - 알랭 드 보통 편’ 을 보고나서 부터였다. 웬 머리가 벗겨지고 눈이 예쁜 아저씨가 영상에 나타나더니, 그 특유의 영국식 발음과 부드럽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자신의 서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사람이 쓰는 책은 어떨까 엄청 궁금해졌다. 특히 말할 때의 발음과 목소리도 있지만 선택하는 단어나 문장 구성을 볼 때 정말 하나하나 곱씹어서 이야기 하는데 마치 입에서 나온 글자들이 적혀져 내려갈 것만 같았다.

여행의 기술



여행의 기술은 내가 처음 읽기로 다짐했던 알랭 드 보통의 책이다. 일전에 한 번 읽으려고 도서관에서 빌렸지만 특유의 수사가 많은 글에 적응을 하지 못해 읽어내려가지 못했다. 도대체 한 문장이 언제쯤 끝나는거야 싶을 정도로 수식이 많았고, 그 수식들도 문화적 소양이 없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들이 많아 심지어 조금은 짜증까지 났다. 결국 그렇게 4주는 흘러갔고 책을 반납했다.
다시 이 책을 찾게 된 이유는 SNS 상에서 인용된 걸 보고나서였다.

우리는 사랑의 감정이 상대가 빵에 버터를 바르는 방식에 닻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또 상대가 구두를 고르는 취향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기도 한다.

알랭 드 보통의 많은 글 중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구절이 아닐까 싶다. 그의 글에는 생각지도 못한 디테일이 있었다. 다른 내용들도 전부 궁금해져 언제고 꼭 찾아 읽어야지 하던 도중 이 책을 선물받게 된다.

다시 찾은 알랭 드 보통의 책은 분명 수사가 많아 읽기에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독서를 조금이나마 습관화시켜서 인지 예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그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수사들은 마구잡이로 놓여진 것이 아니었다. 그 속의 위트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적인 충만감을 주었다. 물론 내 식견이 부족한 탓에 저자가 의도한 바의 절반도 이해를 못한 것 같지만.
읽는 내내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인터뷰 영상을 통해 들었던 영국 억양의 부드럽고 힘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글로 적혀져 있음에도 그렇게 들려왔던 것이다.) 여행을 하게 되는 기대감부터 여행을 하면서 들르는 장소, 그리고 돌아와서에 이르기까지 ‘여행의 기술’ 이라기 보다는 여행에 대한 고찰이 더 적확한 제목이 아닌가 싶다.
첫 장, 여행을 하게 되는 기대감을 읽을 때에는 솔직히 예전의 당혹감이 몰려왔다. 그저 여행은 너무 큰 기대를 하고 가면 실망하기 십상이지만, 그 기대 자체도 여행의 일부이다 라는 말을 뭐 이렇게까지 풀어 하나 싶었는데, 여러 일화들을 읽어가며 웃음을 짓게 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은 역시 여행에서 느낀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존 러스킨’을 인용하여 그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데,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데생’ 다른 하나는 ‘말 그림’ 이다. 두 가지 모두 아름다움을 느낀 대상을 그대로 옮겨 두기 위한 ‘사진’을 넘어서는 방법으로 제시되는데, 그 당시의 감정을 그대로 살려서 담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대상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대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든다. 사진에 대한 생각은 나와 많이 다르지만, 그림에 대한 생각이 요즘 그림을 취미로 삼고 있는 나에게 크게 와닿았다.
보통 어떤 작가를 알아갈 때 한 권을 읽으면 그의 다른 책들은 안봐도 뻔하다는 생각이 들거나 다른 저작들도 궁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알랭 드 보통은 후자다. 제목들만 봐도 그 범위가 엄청난데 이 지성이 뚝뚝 넘쳐 흐르는 영국 억양의 아저씨는 그 많은 주제들에 관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어떻게 정리 했을까 궁금하다. 이 책 다음으로는 그의 첫 책을 읽어볼 예정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언제고 무심코 집어들었던 책이다.

워낙이 영향력이 큰 철학자라 여기저기서 그의 말들이 인용되는데,

냉철하고 직관적인 격언들이 인상 깊어 어떤 말들을 남겼는지 궁금하던 찰나에 발견한 책이다.

니체에 관한 정보는 다음 링크를 참조.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 서울 철학사상연구소


연구를 하는 학생임에도 열정과 끈기가 부족한 내게 이 책은 매서운 채찍이었다.

여러가지 격언들이 용기를 북돋워주기도 했고, 따끔하게 매질을 하기도 했고, 가만히 다독여주기도 했다.

사실 이런 서적은 추천하진 않지만 (심지어 이 책 내용 안에 니체가 한 말에도 그런 내용이 있다.)

이 책에 발췌되어 있는 저서들이 궁금해서 찾아보고 싶어져서 나름 효과적(?)으로 모티베이션이 된 듯 하다.

좋은 글귀들이 너무 많아 연필로 줄 치고 포스트잇을 붙여가면서 읽었는데, 시간이 나면 다 옮겨써야지 싶다.




드로잉 수업

저자
버트 도드슨 지음
출판사
미디어샘 | 2012-07-18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20년간 전세계에서 사랑 받아온 드로잉 책 한국어판 정식 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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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그림을 끄적거리다가 뭔가 턱턱 막혀서
언제고 한 번은 드로잉과 관련된 책을 읽어봐야지 싶었다.
그러다가 학교 도서관에 드로잉과 관련된 책이 어떤게 있나 보다가
e-book 이 대여 가능했던 버트 도드슨의 드로잉 수업 을 발견했다.

몇 페이지 넘겨보다가 생각보다 체계적인 것 같아서 빌려 읽었다.

책을 읽어가다 보니 그림 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전반적인 태도에 대한 조언이기도 해서
읽어내려가는 재미가 있었다.
예전에 글쓰기에 관련된 책을 읽다가도 똑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어느 분야에서 대가가 되면 그렇게 접근하게 되나보다.

‘드로잉은 본질적으로 엄격한 공식의 적용이라기보단 단지 ‘보는과정’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눈을 믿는 것과 더불어 예술가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호기심입니다.’
‘호기심이 과학적인 것이든 시각적인 것이든 간에 경이로움을 느끼며 세상에 접근한다는 사실이,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설득력과 아름다움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드로잉이란, 대상을 보고 윤곽이나 형태에 주목한 뒤 마음속에 그것을 담아두었다가 잊어버리기 전에 그리는 것’
‘괴롭다고 시작하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겨우 깨달았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별난 아이디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우리 몸이 별난 단백질을 싫어해서 같은 양의 에너지를 써가며 저항하는 것과 같다. 솔직히 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기 전에 스스로 끊임없이 논쟁을 하지 않는가. - 윌프레드 트로터’
‘상상을 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은 필요없습니다.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상상을 합니다. 절대 스스로 상상력이 빈곤하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개 상상력이란 가끔 별난 아이디어를 즐기는 마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창조란, 직전의 행위에 의존하고 다음의 행위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 에드윈 랜드’

예술 뿐만아니라 철학에도 조예가 깊은 인생 선배의 드로잉 수업. 좋다. 드로잉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한 번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07-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지금, 당신은 어느 역에 서 있습니까? 출간 7일 만에 10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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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은 1Q84를 읽고난 뒤에 한동안 읽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조미료같은 할아버지. 맛나게 잘 쓰는 건 감히 내가 평가할 수준이 아니지만,
뭔가 내게는 다 비슷비슷해 보였다.
이 책은 생일 선물로 받아서는 이제야 펼쳐보았는데, 3일만엔가 시간을 쪼개어 다 읽어내려갔다.
세미나 준비를 해야함에도 하루키의 책을 한참 읽어내려갔다.
다 읽고 난 뒤 마음 속 어딘가가 간질간질 해서 얼마전에 산 하얀 컨버스로 갈아신은 뒤 운동장으로 향했다.
점심도 맥도날드에서 배달시켜 먹은 터라 좀 걸어야겠다는 생각도 크게 한 몫을 했다.
기온은 따뜻하지만 하늘이 적당히 흐려서 볕이 강하지도 않았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었다. 완연한 봄이었다. 짧은 산책이니만큼 한걸음 한걸음 꼭꼭 씹어가며 걸었다.
운동장에서 전력을 다해 축구를 하는 학생들을 보며 걷다가 문득 학교는 그래도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을 했다.
사분의 일쯤 걸었을 때 문득 이틀 전 전자도서로 대출한 드로잉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잠깐 훑어보느라 몇 페이지 읽었는데, 그림을 그릴 때 마음의 자세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요지는 그림을 그릴 때 부정적인 피드백을 스스로에게 보내며 그릴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피드백을 보내며 그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단 드로잉 뿐만이 아니라 연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하는 주제나 상황에 대해 생산적인 대화를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는다면 그 대학원 생활은 지옥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떻게든 박사는 딸 수 있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어떻게 따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박사과정은 비단 연구나 프로젝트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이런 과정을 겪어보는 것 자체도 박사과정을 하는 동안 거쳐야만 하는 관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니 잘 이겨내보자 했다.
운동장을 다 돌아갈 때 즈음,
책을 읽고 간질간질했던 마음이 무엇인지 알았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괜찮다 괜찮다 하고 잔잔하게 나를 위로해 주었다. ‘순례의 해’라는 좋은 음악과 함께.



  • 하루키가 여자를 묘사할 때는 특유의 집요함과 디테일함이 더 잘 드러난다. 첫인상과 옷차림, 목소리, 복장, 악세사리를 토대로 그 인물의 성격 및 성장과정은 물론이고 (결정적으로) 잠자리에서 어떤 모습일지 까지 풀어 상상하는 장면을 볼 때면 내가 남자라 다행이다 싶다. (어차피 하루키 할아버지를 대면할 일은 없겠지만)
  • 이름이 가진 무게에 대해 언급이 된 부분이 있다. 애초에 제목부터도 이름에 색깔과 관련된 한문이 들어가지 않아서 ‘색채가 없는’으로 시작하니 말 다했지만. 나 역시 언제고 나는 내 이름대로 살고 있는가 하고 자문해본 적이 있다. 대답은 주로 ‘열심히 하자’로 그쳤다. 이름에 의해서 그 사람의 그릇이 결정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이름의 무게가 삶의 무게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삶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있을 때 말고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내 이름대로 살고 있는가, 이름대로 살고 있는지 돌아 볼 수 있는가.
  • 소위 말하는 ‘좋은 책’이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끔 하는 책이라고들 한다. 하루키의 책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게끔 하는 힘이 분명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딱 ‘생각’이라는 걸 스트레스 받지 않는 선까지만 하게끔 한다. 그래서 대중에게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영화 ‘설국열차’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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