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likan M805 Stresemann (펠리칸 M805 스트레제만)

M805#1

조류독감!

흔히들 펠리칸 만년필에 꽂혀 사고싶어지는 마음을 ‘조류독감’ 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요즘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무튼, 살림을 열심히 했고, 신혼여행에서 크게 뭐 안샀고, 입사 축하 선물 겸 무사히 경조사비도 수령한 겸 해서 큰 마음을 먹으신 마나님 덕에, 펠리칸을 지르기로 결심했다.

어떤 걸 살지 정말 거짓말 안보태고 2박3일은 고민한 것 같다.

장고 끝에 다음과 같은 이유로 펠리칸 M800을 지르기로 결심했다.

  1. 펠리칸의 금촉.. 금촉을 써보자.
  2. 기왕 갈거면 한 방에 가자.
  3. 대형기를 써보자.
  4. 펠리칸이 행사중이다!
  5. 남대문 수입상가도 있다!

구매기

남대문에 가서 직접 눈으로 살펴보고 최종적으로 Pelikan M805 Stresemann 을 구매했다. 역시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 투톤닙은 어쩐지 색이 바랠 것 같았다.
  • 그린 스트라이프는 뭔가 나이 들어보인다.
  • 레드 스트라이프는 어쩐지 일상 생활에 쓰기에 부담스럽다.
  • 블루 스트라이프는 계절을 탈 것 같다. 그리고 원톤 닙이 어울린다.
  • 블랙은 뭔가 심심해… 스트라이프…
  • Stresemann의 가격이 M800 일반 모델과 같았다…!

외관

일본에서는 Black stripe 로 불린다고 한다. 외관은 조지오 알마니 스트라이프 수트같다. 으흐흐.

중후한 것이 그렇다고 멀리서 보기에 너무 튀지도 않는 것이 마음에 쏙 든다.

M805#2

만년필 얼짱포즈로도 찍어보았다. 아 멋지다.

마나님의 화장품 리뷰 사진을 위한 스튜디오는 사실 이런 목적도 조금은 있었던 것이다.

M805#3

처음 쥐어보고 놀랐던 건, 걱정했던 것보다 사이즈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트위스비 에코가 손에 괜찮았다 싶은 분들은 M800대 시리즈도 전혀 무리없이 쓸 수 있다. 둘의 크기가 거의 비슷하다.

무게 밸런스는 캡을 제외하고 쓰는 경우 밸런스는 괜찮지만 어쩐지 어딘가 허전하고, 캡을 씌우고 쓰면 밸런스가 나쁘지 않은데다 ‘아 내가 대형기를 쓰고 있구나’ 하는 기분을 선사한다. 배럴에 흠집이 가던말던 나는 캡을 끼우고 쓰기로.

요즘 말이 많은 펠리칸 닙 사진을 보자.

M805#4

소심해서 사장님께 직접 써보겠다고는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맨눈으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원래 사려고 했던 F닙은 재고가 없었고 EF 닙만 보유하고 계시단 말에 정말 심각하게 고민을 많이 했다. 최근 들어 펠리칸의 Quality Control이 엉망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던 거다. 특히 EF 닙의 경우 1:9의 닙 비율까지 있다고 해서 더 불안했더랬다.

신중히 골라 온 결과는 보다시피 5:5로 예쁘게 뙇.

시필

시필을 해보니 흐름도 좋다.

그리고 펠리칸은 정말 다른 만년필 브랜드들보다 살짝 굵은 것 같다.

아래는 역시나 유럽 만년필 브랜드인 라미2000 F닙과 비교한 사진이다.

시필비교샷

대충 쓰고 찍어보았다.

잉크가 들어있는 만년필들로만 우선 비교를 해보았다. 어쩌다 보니 몽블랑 잉크만 잔뜩이네.

라미2000의 F닙과 비교를 해보아도 살짝 더 굵다. 라미2000의 경우 구매한지 조금 되었고 주력기로 사용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펠리칸 EF는 역시 상당히 굵은 편이다.

필감이 생각보다 묘했다. 부드러운데 사각인다.

이게 무슨 시적 허용이냐 하시겠지만, 실제로 글을 써내려 가는데 닙에 들어가는 힘이 분명 덜함에도 잉크가 삭삭 묻어나오고 그와중에 사각이는 필감이 느껴진다. 라미2000은 폭신하면서 부드럽다. 사각이는 맛은 없다. 펠리칸 M805 Stresemann을 쥐고 글을 쓰는게 재미있었다. 짧은 한 문장이 아니라 길게 주저리 주저리 쓰고 싶은 기분이다. 이래서 필기머신이라 부르나보다 (응?)

ㅍㅍㅅㅅ 뉴스를 보다가 구글의 아홉가지 채용 기준이라는 글을 보았다.

지금 내 삶에서 필요한 부분과 경계해야될 부분이 훅 들어와서 블로그와 일기에 남겨둔다.


1

Do hire people who are smarter and more knowledgeable than you are.

Don’t hire people you can’t learn from or be challenged by.


2

Do hire people who will add value to the product and our culture.

Don’t hire people who won’t contribute well to both.


3

Do hire people who will get things done.

Don’t hire people who just think about problems.


4

Do hire people who are enthusiastic, self-motivated, and passionate.

Don’t hire people who just want a job.


5

Do hire people who inspire and work well with others.

Don’t hire people who prefer to work alone.


6

Do hire people who will grow with your team and with the company.

Don’t hire people with narrow skill sets or interests.


7

Do hire people who are well rounded, with unique interests and talents.

Don’t hire people who only live to work.


8

Do hire people who are ethical and who communicate openly.

Don’t hire people who are political and manipulative.


9

Do hire only when you’ve found a great candidate.

Don’t settle for anything less.


by Eric Schmidt, in <How Google Works>



​언젠가 지름의 보고인 문방삼우 카페에서 가성비의 탑이라는 파이로트의 78G 라는 만년필에 대해 주워 듣게 된다. 

이 가격대에 금도금 촉을 느껴볼 수 있는 유일한 만년필이라는 이야기에 엄청 혹했는데,

어떤 회원분께서 엄청 자상하시게도 이베이 셀러를 링크 해두셨다...

들어가 보았더니 닙 크기도 마침 내가 찾던 M닙.

쉐퍼의 M 닙은 생각보다 너무 두꺼워서 이거보단 조금 가늘었으면 했는데 

마침 파이로트의 M 닙이니 생각보다 쓸만할 것 같단 생각에 질렀다. 

해외 배송이라 조금 오래 걸리겠거니 했는데, 오늘 연구실에 정신줄 놓고 있던 도중에 갑자기 택배가 뙇

 

 

 

 

 






이렇게 생긴 것만 봐도 나 외국물 좀 먹었어요 하는 아이가 눈 앞에 뙇










이렇게 뽁뽁이에 쌓여서 안전하게 배달 옴










구성품은 이렇다.

펜, 카트리지, 펜 안에 있는 컨버터, 만년필 설명서.

어디서 본게 있어서 나름 이렇게 정갈하게 놓고 사진을 찍었다.

정갈하다고 주인님께 칭찬받음.










아 이 금 도금 닙의 영롱함이란.

무려 22k 란다.

닙에 'Super Quality'라고 적혀있다. 얼마나 퀄리티에 자신이 있었으면 저렇게 새겼을까.










기본적으로 들어있는 컨버터는 CON-20 이라고 한다. 

여태까지 썼던 스크류 달린 컨버터와는 달리 스포이드 처럼 쭙쭙 빨아들이는 방식이라는데 불편하다는 평이 종종 있더라.

근데 문방삼우 카페 회원님의 댓글을 읽어보니 들어가는 잉크 양은 많다고.

급한 마음에 나는 컨버터를 끼웠으니 이 아이는 다음에 사용해 보기로 한다.





 

 

 

 

 

일본 만년필 회사의 세필이 얼마나 세필인지는 이 시필샷을 보면 알 수 있다.

로디아 메모 패드라 더 가늘게 나온 것도 있긴 하지만, 

쉐퍼 M 닙과 파이로트 M닙의 굵기 차이는 이렇게나 어마어마하다.

 

캡은 스크류 방식이다. 처음 써보는데 뭔가 열었다 닫았다 하기 귀찮은 것이 한 번에 많은 양을 쓸 때 (일기라거나 일기 혹은 일기) 주로 쓰게되지 않을까 싶다.

필감은 부들부들한데 아주 조금 사각인다. 이건 써봐야 아는 건데 말로 표현하다 보니 포스팅 수가 늘어날수록 구차해지는 기분이여.

무게는 뭔가 싼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는 느낌만큼 가볍다.

하지만 만년필은 역시 닙이 80%라고 생각하므로 괜히 다들 가성비 최고라고 말하는게 아니구나 싶다.

 

가격은 $10가 채 안되고 홍콩에서 온 배송비도 국내 배송비랑 비슷하게 $2.5 정도 소요되서 13천원 정도 들었다.

국내에서 중고로 사는게 아니라면 오픈 마켓에 2만7천원에 파는 무뢰배들이 있는데

이베이에 가입하고 구매하기 까지 15분이 채 걸리지 않았으므로 비자나 마스터카드가 있으면 이베이에서 직구하는게 두 배는 싸다.

 

그럼 또 한동안 아낌없이 써볼까.



 

허핑턴포스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글(http://www.huffingtonpost.kr/owen-joe/story_b_6008202.html?utm_hp_ref=korea)이 올라와 읽는데 재미있는 표현이 있었다. 하루키의 소설은 읽는 이에게 ‘취향’이 생기게끔 한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이 ‘취향’을 ‘체험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는 것. 음악, 음식, 라이프 스타일, 패션에 걸쳐 이루어지는 하루키 특유의 디테일한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그 취향을 공유하고 싶게 만든다. 당장에 나부터 하루키의 책을 읽을 때에는 소개되는 음악을 옮겨 적거나 심지어 틀어놓고 읽기까지 한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나는 대학에 진학하고 의복과 생활에 자유가 본격적이고도 광범위하게 주어지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스타일 (취향)이 명확한 사람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 유행에 따라 옷을 잘 입는 친구들 보다는 어디서 저런 옷을 구해서 어떻게 저렇게 입을 생각을 했을까, 싶게 만드는 친구들이 훨씬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갈색 티셔츠를 둘둘 말아 두건처럼 쓰고 다녔던 친구나, 가수 비가 방송에 입고 나오기도 전에 맨몸에 자켓을 걸치고 스카프를 한 친구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라이프 스타일 자체를 동경했던 사람도 한 명 있었는데, 학부 4학년 즈음 같이 살았던 룸메이트 형이 그랬다. 약간은 촌스럽게 생긴 이목구비였지만 큰 키에 어깨가 딱 벌어진 마른 몸은 검정색 티셔츠와 청바지가 멋지게 어울렸고, 자기 전에는 항상 재즈를 틀어놓고 검정색의 동그란 금속테 안경을 끼고는 침대맡에서 책을 읽었다. 그 형에 비하면 비주얼은 한참 동떨어지지만 기숙사에서 나와 자취방을 가졌을 때, 자기 전 책을 읽어보겠답시고 스탠드를 머리맡으로 옮겨두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비주얼 뿐만아니라 독서량과 수준도 아직까지 그 형과 한참 거리가 있다 싶다.

 

내가 재즈를 하루키의 책을 통해 소개 받았고, 자기 전 책을 읽는 라이프 스타일은 예전 룸메이트 형을 따라했듯이 취향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공유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공유된 취향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기까지는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막연한 동경과 작은 호기심에서 출발한 ‘취향’은 자신 속에서 몇번이고 소화시키고 양분으로 삼으며 살을 붙여나가 보아야 진정한 의미의 ‘취향’이 된다. 물론 새로운 취향이 몸에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어차피 배가 고플테니 밥을 먹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진정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취향을 찾는다면 왜 이 맛있는 걸 이제서야 먹기 시작했지 싶을 것이다. 나 역시 조금 더 자유로운 시간이 많았을 때 다양한 취향들을 음미해 보았으면 좋았을텐데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랬다면 내가 동경했던 사람들처럼 내 취향도 내 맛이 깃들어 더 멋졌을텐데 말이다.

 

얼마전 면접차 올라온 동생에게 최근에 가장 자주 썼던 만년필을 선물해주었다. 써보고 싶지만 만년필에 들이는 시간이 낭비일 것 같다던 동생의 말에 보란듯이 카트리지를 끼워주었다. 면접이 끝나고 집에 내려간 날 동생에게 카톡 하나가 왔다. 손에 땀이 많아 만년필로 쓴 글자들이 번진다는 것이다. 나는 냉큼 유투브에서 만년필로 글씨를 쓰는 영상 하나를 찾아 동생에게 보내주었다. 그 이후로 써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별 말이 없다. 동생에게 만년필이 잘 맞아서 멋들어진 취향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취향’이라는 건 확실히 전파의 욕구도 불러 일으키는 모양이다.



아주 어릴 적 좋아하던 여학생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넌 한글로 쓰지 말고 영어로 써, 그게 훨씬 더 예뻐.”

 글씨체에 신경을 썼던 건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손으로 써가며 공부를 하는 편이다 보니 나름 손에 익은 글씨체가 있었던 데다가 남중, 남고라 내 글씨체는 그리 못난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전혀 의식할 일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글씨를 바꿀 수 있을지 고민을 하던 차에 ‘어떤’ 글씨체로 바꾸는 것이 좋을지부터 결정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씨체를 바꾸는 데에는 따라 쓰기만 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주변에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찾다가 같이 학원에 다니는 친구 하나가 생각나 무작정 필기한 걸 빌려달라고 했다. 완전히 똑같진 않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어느 정도 악필은 면할 수 있었다. 대학 진학 후에 여전히 내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만년필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 번 교정을 시도했지만, 꾸준히 정성을 들일 여유는 없어서 바꾸지는 못했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바로 글자에 규칙이 없다는 것이다. 같은 글자라도 쓸 때마다 모양이 제각각이라 다 써놓고 보면 괜히 지저분해 보여서 눈에 거슬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손으로 쓰는 일이 많아진 요즘 다시 한 번 글씨체를 바꾸어볼까 하는 생각에 이런저런 자료들을 읽어보다가 

“생각을 일구어주는 글씨체와 생각의 흐름을 막는 글씨체가 있다.”

라는 글을 보고 글 쓸 때 어땠는지 되돌아보았다.

분명 글씨를 예쁘게 쓰려고 했던 글들은 컴퓨터로 옮겨 쓸 때 세부적인 내용이 듬성듬성 빠져있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글씨체가 괴발개발인 경우는 보통 내용의 흐름을 잊기 전에 휘갈겨 쓴 탓인지 옮겨 쓸 때 수정하는 양이 훨씬 적었다. 역시 외면 보다는 그 내면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최종 목표는 컴퓨터로 글을 써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니 글씨체 자체는 결국 염려할 바가 아니었던 셈이다. 

이번에도 글씨체를 고쳐보자는 다짐은 무위로 돌아간다. 하지만 마음속을 계속 간지럽히던 딱지 하나는 떼어낸 기분이다. 글씨체에 신경 쓸 시간에 내용에나 더 집중하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