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중에 박사 학위를 딸 때 자신에게 선물로 줘야지 하고 다짐했던 모델이 있다. 바로 ‘라미 2000’이다. 처음 만년필을 구매할 때 어떤 제품이 있는지 찾아보다가 첫눈에 반했던 이 만년필은 이천 원짜리 볼펜도 비싸다 생각했고, 만년필이 실제로 쓸 때 어떨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그 무렵의 나에게는 여러모로 과분한 것이었다. 그래서 저렇게 거창한 계기를 붙여둔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생일 선물로 받은 트위스비 만년필로 일기를 쓰다가 문득 이제 라미 2000은 사지 않아도 되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만년필은 내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평생을 함께하다가 나중에 아이에게 물려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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