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색 잉크의 사용량이 생각보다 많아서 새로 하나 살까 하다가 

책상 한 켠에 놓여있는 펠리칸 4001 블루블랙 병잉크를 다시 꺼내들었다.


사실 만년필로 필기하는 양 자체가 많지 않아서 ㅡ 전체적으로 손으로 글씨를 쓰는 양도 적은 편이다 ㅡ 병잉크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데,

이 블루블랙 잉크도 다 못쓸 것 같아서 30ml 로 산 것이었다.


나는 지름신, 뽐뿌신이 온 뒤에 현자타임 비슷한 것이 뒤따르는 편인데, 

한동안 받았던 만년필과 잉크 지름신을 물리치고 나니 지금 있는 것들이나 잘 쓰자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만년필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처음 샀던 병잉크.

원래 쓰던 건 만년필을 막 쓰기 시작한 후배에게 줬었고, 이 건 그 이후에 블루블랙이 아쉬워서 새로 산 것.


비싼 잉크를 쓸 엄두는 아직 나지 않는다.

만년필 역시 그러하다.


그러니까 다시,

있는 것들이나 잘 쓰자.

충분히 쓰다가 '필요' 해지면 사자.


지름신 훠이.


나는 조금이라도 줄을 치거나 써내려갈 일이 있을 때 책상 위에 만년필과 연필을 꺼내어 둔다.
허세 때문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는 더더욱 아니다.
과거에 써본 적도 없는 만년필에 무슨 향수가 있겠는가. 연필은 오히려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났던 필기구였다. 친구들의 제도 샤프들이 어찌나 멋있어보이던지.

학용품의 쓰임 자체가 줄어든 지금에도 굳이 이 필기구들에 욕심을 내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이 필기구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 때문이다.
만년필의 경우 손에 힘을 빼고 손목만을 이용해 글씨를 써내려 갈 때 - 이것이 올바른 만년필의 사용법인데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씨는 (비싼) 만년필을 꾹꾹 눌러 써서 많은 만년필 애호가들이 기겁을 했다고 - 의 느낌은 써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 느낌을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는 영상을 얼마전에 ‘문방삼우’ 카페에서 보게 되어 여기에 링크를 남긴다.

연필의 경우에는 사실 손 그림을 그릴 때 쓰기 시작했다가 사각거리는 소리에 빠져
아이디어 스케치 및 책에 밑줄 긋기, 메모 등에 사용하고 있다.
예전에는 심이 뭉툭해지는 것이 그렇게도 싫어서 샤프를 찾았는데, 이제는 연필로 그을 수 있는 일정하지 않은 선이 너무 좋은 거다.

일전에 연필에 대해 검색을 하다가 블로그에서 적혀있던 글이 연필의 매력을 잘 설명해준다.

연필을 쓰면 그 날 얼마나 노력했는지 눈으로 볼 수 있다.

아마 이런 매력들이 요즘 이 필기구들을 문구 덕후들(나를 포함해서)이 찾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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