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지성인들이 여행을 추천한다. 책에서는 구할래야 구할 수 없는 값진 직접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부담' 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알지 못했던 상황과 마주하며 얻을 경험과 이에 대한 설렘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낼 수 있는지, 그리고 경비는 얼마나 들지부터가 머릿속을 휘저으며 뿌옇게 눈을 흐린다.  

그래서 나는 어딘가를 내가 주체적으로 여행 다닌 기억이 거의 없다.  

어렸을 적엔 부모님 손에 이끌려 다녔고, 학부생일때에는 휴학 중 워킹홀리데이를 가려다가 경제적인 문제로 좌절되었다.  

대학원에 들어와서야 학회 덕분에 그나마 여기저기를 다녔는데 그건 역시 여행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으니 포함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만큼 여행에 대한 부담감은 큰데, 얼마 전 제주 여행 중 짝꿍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왜 이렇게 여행에 부담을 느끼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짝꿍과 했던 이야기는 다름 아닌 유럽인들의 여행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은 한달이라는 기간동안 숙소를 한두군데 정해두고 쉬면서 여행을 한다는 것이다. 짝꿍과 제주도 여행을 다니며 무리하게 다니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자는 얘기를 하던 중이었는데, 대부분의 우리 나라 사람들이 전투적으로 여행하는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유럽인들의 여행 방식을 거론하게 된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여행이라는 게 휴식을 위한 것인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을 할 때엔 빈틈없고 치밀하게 시간을 쪼개서 계획을 잡고 목표를 수행하려다 보니 나중엔 오히려 여행 자체가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무렴 휴가 가기가 싫다는 사람까지 있을까. 

이런 경향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떠올리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름아닌 근무시간이다. 휴가로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은 짧기만 하다. 실제로 정량적인 수치가 궁금해 우리나라 근로자의 근무시간 및 평균 휴가일수를 조사해보니 생각 이상으로 충격적이었다. 근무시간의 경우 OECD 국가의 평균 근무시간보다 연 630시간이 더 길며, 유급휴가 일수는 작년 기준으로는 10일에 그쳤다. 그마저도 7일이나 쓰면 다행이라는 것이다. 이는 대상 조사국 중 최하위로 근무시간까지 대비해서 본다면 참담하기까지 하다. (http://magazine.hankyung.com/apps/news?popup=0&nid=01&c1=1004&nkey=2013122000942000481&mode=sub_view) 이렇게 힘들게 낸 시간이니만큼 휴가를 잘 써야한다는 각오는 커지기 마련이고 잘 써야된다는 생각에 일정을 무리하게 잡아 최대한 하나라도 더 구경하거나 맛보려는 것이겠다. 이러니 여행이 휴식이 아니라 연례행사가 되는 수 밖에.

 

어르신들은 예전보다는 그래도 훨씬 나아졌다고 말한다. 흔히 ‘우리때는 말이야’ 로 시작하는데, 예전과는 근로자들의 업무행태가 다르다. 가치 창출을 하는 산업군이 다르다. 단순히 시간을 많이 들여서 하는 일은 이미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에서 벗어난지가 한참이다. 당시의 제도를 여기에 갖다 대기엔 카테고리 자체가 다르다. 현 정부가 좋아하는 키워드인 ‘창조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건 이제 두말하면 입아픈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나라는 ‘휴식’에 인색하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또 하나 있다. 이제는 스마트폰 위로 손가락만 조금 움직이면 세계의 소식을 알 수 있고, 지금도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직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달라져 있다. 회사에서 직원들이 왜 놀면 안되냐는 제니퍼 소프트 같은 회사도 있고 빡세기로 소문난 대기업에서도 자율 출근을 시행한다. 더디고 더뎌 내 생에 누릴 수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금씩 바뀌어나가고 있음에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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