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07-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지금, 당신은 어느 역에 서 있습니까? 출간 7일 만에 10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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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은 1Q84를 읽고난 뒤에 한동안 읽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조미료같은 할아버지. 맛나게 잘 쓰는 건 감히 내가 평가할 수준이 아니지만,
뭔가 내게는 다 비슷비슷해 보였다.
이 책은 생일 선물로 받아서는 이제야 펼쳐보았는데, 3일만엔가 시간을 쪼개어 다 읽어내려갔다.
세미나 준비를 해야함에도 하루키의 책을 한참 읽어내려갔다.
다 읽고 난 뒤 마음 속 어딘가가 간질간질 해서 얼마전에 산 하얀 컨버스로 갈아신은 뒤 운동장으로 향했다.
점심도 맥도날드에서 배달시켜 먹은 터라 좀 걸어야겠다는 생각도 크게 한 몫을 했다.
기온은 따뜻하지만 하늘이 적당히 흐려서 볕이 강하지도 않았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었다. 완연한 봄이었다. 짧은 산책이니만큼 한걸음 한걸음 꼭꼭 씹어가며 걸었다.
운동장에서 전력을 다해 축구를 하는 학생들을 보며 걷다가 문득 학교는 그래도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을 했다.
사분의 일쯤 걸었을 때 문득 이틀 전 전자도서로 대출한 드로잉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잠깐 훑어보느라 몇 페이지 읽었는데, 그림을 그릴 때 마음의 자세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요지는 그림을 그릴 때 부정적인 피드백을 스스로에게 보내며 그릴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피드백을 보내며 그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단 드로잉 뿐만이 아니라 연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하는 주제나 상황에 대해 생산적인 대화를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는다면 그 대학원 생활은 지옥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떻게든 박사는 딸 수 있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어떻게 따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박사과정은 비단 연구나 프로젝트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이런 과정을 겪어보는 것 자체도 박사과정을 하는 동안 거쳐야만 하는 관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니 잘 이겨내보자 했다.
운동장을 다 돌아갈 때 즈음,
책을 읽고 간질간질했던 마음이 무엇인지 알았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괜찮다 괜찮다 하고 잔잔하게 나를 위로해 주었다. ‘순례의 해’라는 좋은 음악과 함께.



  • 하루키가 여자를 묘사할 때는 특유의 집요함과 디테일함이 더 잘 드러난다. 첫인상과 옷차림, 목소리, 복장, 악세사리를 토대로 그 인물의 성격 및 성장과정은 물론이고 (결정적으로) 잠자리에서 어떤 모습일지 까지 풀어 상상하는 장면을 볼 때면 내가 남자라 다행이다 싶다. (어차피 하루키 할아버지를 대면할 일은 없겠지만)
  • 이름이 가진 무게에 대해 언급이 된 부분이 있다. 애초에 제목부터도 이름에 색깔과 관련된 한문이 들어가지 않아서 ‘색채가 없는’으로 시작하니 말 다했지만. 나 역시 언제고 나는 내 이름대로 살고 있는가 하고 자문해본 적이 있다. 대답은 주로 ‘열심히 하자’로 그쳤다. 이름에 의해서 그 사람의 그릇이 결정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이름의 무게가 삶의 무게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삶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있을 때 말고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내 이름대로 살고 있는가, 이름대로 살고 있는지 돌아 볼 수 있는가.
  • 소위 말하는 ‘좋은 책’이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끔 하는 책이라고들 한다. 하루키의 책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게끔 하는 힘이 분명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딱 ‘생각’이라는 걸 스트레스 받지 않는 선까지만 하게끔 한다. 그래서 대중에게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영화 ‘설국열차’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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