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집인 줄 모르고 샀다. 한 편 한 편이 끝날 때마다 장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잘 읽힌다. 하루키의 소설 중에서는 자극이 덜한 편이었지만 역시나 죽음, 섹스, 음악, 음식, 술, 있어보이는 말들이 적절하게 버무러져 있다. 

- '카프카'의 '변신'을 모티브로 한 단편도 재미있었고, '천일야화'를 따온 단편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단편에서 '여자 없는 남자들'에 대한 정의와 설명은 참 인상 깊었다.

  분명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을 잃은 후에 세계가 묘하게 틀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후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 그리고 한번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어버리면 그 고독의 빛은 당신 몸 깊숙이 배어든다. 연한 색 카펫에 흘린 레드 와인의 얼룩처럼. (...) 그 얼룩을 지우는 건 끔직하게 어려운 작업이다. 시간과 함께 색은 다소 바랠지 모르지만 얼룩은 아마 당신이 숨을 거둘 때까지 그곳에, 어디까지나 얼룩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얼룩의 자격을 지녔고 때로는 얼룩으로서 공적인 발언권까지 지닐 것이다. 당신은 느리게 색이 바래가는 그 얼룩과 함께, 그 다의적인 윤곽과 함께 생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 설령 그후에 다른 새로운 여자와 맺어진다 해도, 그리고 그녀가 아무리 멋진 여자라고 해도 (아니, 멋진 여자일수록 더더욱), 당신은 그 순간부터 이미 그녀들을 잃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 왜냐하면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는 게 어떤 일인지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 여자 없는 남자들에게 세계란 광대하고 통절한 혼합이며, 그건 그대로 고스란히 달의 뒷면이다.

'여자 없는 남자들' 中,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책은 음악 정리하는 맛을 빼먹을 수 없다.

특히 이번 단편집 중 '기노' 에서는 오래된 재즈 음악들이 잔뜩 소개되는데,

재즈바를 하다가 소설가가 된 그의 진가는 이런 곳에서 제대로 발휘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베토벤 현악 사중주 모음 Beethoven String Quartet 



Joshua Fit the Battle of Jericho by Coleman Hawkins



Art Tatum Piano Solo 모음집



Georgia on My Mind by Billy Holiday



Moonglow by Erroll Garner






I Can't Get Started by Buddy DeFranco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07-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지금, 당신은 어느 역에 서 있습니까? 출간 7일 만에 10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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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은 1Q84를 읽고난 뒤에 한동안 읽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조미료같은 할아버지. 맛나게 잘 쓰는 건 감히 내가 평가할 수준이 아니지만,
뭔가 내게는 다 비슷비슷해 보였다.
이 책은 생일 선물로 받아서는 이제야 펼쳐보았는데, 3일만엔가 시간을 쪼개어 다 읽어내려갔다.
세미나 준비를 해야함에도 하루키의 책을 한참 읽어내려갔다.
다 읽고 난 뒤 마음 속 어딘가가 간질간질 해서 얼마전에 산 하얀 컨버스로 갈아신은 뒤 운동장으로 향했다.
점심도 맥도날드에서 배달시켜 먹은 터라 좀 걸어야겠다는 생각도 크게 한 몫을 했다.
기온은 따뜻하지만 하늘이 적당히 흐려서 볕이 강하지도 않았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었다. 완연한 봄이었다. 짧은 산책이니만큼 한걸음 한걸음 꼭꼭 씹어가며 걸었다.
운동장에서 전력을 다해 축구를 하는 학생들을 보며 걷다가 문득 학교는 그래도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을 했다.
사분의 일쯤 걸었을 때 문득 이틀 전 전자도서로 대출한 드로잉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잠깐 훑어보느라 몇 페이지 읽었는데, 그림을 그릴 때 마음의 자세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요지는 그림을 그릴 때 부정적인 피드백을 스스로에게 보내며 그릴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피드백을 보내며 그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단 드로잉 뿐만이 아니라 연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하는 주제나 상황에 대해 생산적인 대화를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는다면 그 대학원 생활은 지옥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떻게든 박사는 딸 수 있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어떻게 따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박사과정은 비단 연구나 프로젝트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이런 과정을 겪어보는 것 자체도 박사과정을 하는 동안 거쳐야만 하는 관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니 잘 이겨내보자 했다.
운동장을 다 돌아갈 때 즈음,
책을 읽고 간질간질했던 마음이 무엇인지 알았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괜찮다 괜찮다 하고 잔잔하게 나를 위로해 주었다. ‘순례의 해’라는 좋은 음악과 함께.



  • 하루키가 여자를 묘사할 때는 특유의 집요함과 디테일함이 더 잘 드러난다. 첫인상과 옷차림, 목소리, 복장, 악세사리를 토대로 그 인물의 성격 및 성장과정은 물론이고 (결정적으로) 잠자리에서 어떤 모습일지 까지 풀어 상상하는 장면을 볼 때면 내가 남자라 다행이다 싶다. (어차피 하루키 할아버지를 대면할 일은 없겠지만)
  • 이름이 가진 무게에 대해 언급이 된 부분이 있다. 애초에 제목부터도 이름에 색깔과 관련된 한문이 들어가지 않아서 ‘색채가 없는’으로 시작하니 말 다했지만. 나 역시 언제고 나는 내 이름대로 살고 있는가 하고 자문해본 적이 있다. 대답은 주로 ‘열심히 하자’로 그쳤다. 이름에 의해서 그 사람의 그릇이 결정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이름의 무게가 삶의 무게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삶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있을 때 말고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내 이름대로 살고 있는가, 이름대로 살고 있는지 돌아 볼 수 있는가.
  • 소위 말하는 ‘좋은 책’이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끔 하는 책이라고들 한다. 하루키의 책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게끔 하는 힘이 분명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딱 ‘생각’이라는 걸 스트레스 받지 않는 선까지만 하게끔 한다. 그래서 대중에게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영화 ‘설국열차’ 처럼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읽다가 소설에서 평행 세계관을 처음 접목시킨 책이라 자신의 문학 세계를 더 이해해보고 싶다면 먼저 추천하고 싶다던 하루키의 말에 사서 읽기 시작했다. 내가 읽은 하루키의 작품들은 비교적 최근 작품들이었는데,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확실히 젊을 때 쓴 책이라 최근의 작품과는 다르게 러프한 구석이 많다.


나는 하루키의 장편 소설 보다는 에세이나 단편을 더 좋아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장편 소설에서의 주인공들이 다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다.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성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캐릭터들이 나름의 기준을 가지는 생활 습관을 고수하며 강직하게 살아간다. 그들의 운동 능력이나 요리 실력, 그리고 음악 취향은 두 말할 것 없이 클래식하며 센스 넘친다. 어쩌다 한 번 읽으면 재미있지만 몰아서 보면 물리는 경향이 있다. 조미료 같달까. 그런 하루키의 초창기 작품을 읽으려는 시도는 아마 이 물림이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 

책의 내용은 역시나 또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게 여겨져야 하는 독특한 상황 구성으로 전개된다. 아마 작품에 대한 해설이 섞여있는 서평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이 단순한 판타지 물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원래 해설이 담겨 있는 글을 책을 다 읽기 전에는 - 아니 혹은 읽고 난 후에도 - 잘 읽지 않는 편인데, 그 이유는 책을 읽을 때 그 해설에 편향되어서 책을 읽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이 주변은 커녕 스스로도 돌아볼 틈 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 대한 이야기 라는 해설을 보지 않았다면 이렇게나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주인공이 겪어내는 일들은 앞서 말한 현대인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데, 복잡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정신없이 살아내던 주인공은 갑자기 현실과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한다. 책을 읽어 내려 가다가 주인공의 처지에 나도 모르게 공감하게 되고, 과연 나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지금의 삶에서 떠나게 된다면 과연 남은 시간 동안 무엇부터 할 것인가, 놓치고 살았던 것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자문하게 된다. 침착하고,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주인공은 '탈출구'로 머릿속 세계인 '세계의 끝'을 그린다. '세계의 끝'은 현실과는 다른 유토피아를 꿈꾸어 만들어 두었지만, 이 '세계의 끝' 은 흥미롭게도 '마음'이 없을 때나 실현 가능한 것임을 '세계의 끝'에서 깨닫게 된다. 결국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을 책 두 권으로 설명하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 과정이나 깨달음에서 느끼는 디테일함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느끼'게 해준다. 

한정된 시간의 모습을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지금 내가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도 자문하게 했다. 멈추어 있는 것 같을 때에도 시간은 시시각각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밀도가 높아진 시간 위에선 사소한 것들이 다 새로운 발견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나에게 할당된 이 소중한 시간이 나 이외의 요인에게 좀먹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간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든지 간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의미와 크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서른을 앞드고 시간에 대해 조금씩 민감해져가는 요즘, 내가 보내는 시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 이 책을 만나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어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만나는 또 다른 즐거움을 느꼈달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품 속에서 설계한 평행 세계들은 ‘뫼비우스의 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본의 한 쪽 면은 현실 세계가 진행이 되고, 같은 위치의 반대쪽 면은 기묘한 세계가 진행된다. 두 리본은 서로의 반대쪽 세계에 대한 힌트를 주고 받으면서 진행이 되고, 중후반부에는 그 리본이 맞닿는데 그 맞닿는 방향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한 번 틀어진 채 닿는 것이다. 처음 1Q84를 읽으면서 (2권까지) 느꼈던 재미는 바로 여기서 오는 것이었다. 하루키의 음악이나 요리, 문학적 취향은 차치하고라도, 이렇게 연결 장치들을 마련해놓은 변태적인 치밀함이란 정말.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두 세계에 푹 빠지면서 읽어서 재미있었고, 내가 삶을 살아가며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책이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문학사상사 | 2010-06-1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상실의 시대를 넘어 인간 존재의 문학에 도전한 야심작! 일본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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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문학사상사 | 2010-06-1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상실의 시대를 넘어 인간 존재의 문학에 도전한 야심작! 일본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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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피플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북스토리 | 2006-04-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집. 일상에서 실재하기 어려운 모험적 상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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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피플>

17p 아침에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질듯 느껴진다. 온ㄹ은 이 책을 읽고, 이 레코드를 듣고, 지난번에 받은 편지의 답장을 써야지, 하고 생각한다. 오늘이야말로 책상 서랍을 정리하고, 필요한 물건을 사고, 오랜만에 세차를 해야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계 바늘이 두 시를 돌고, 세 시로 돌아 점점 저녁에 가까워지면 모든 생각이 허물어지고 만다. 그리하여 나는 결국 언제나, 소파에 누워 어쩔 줄 모른다.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94p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나홀로 여행은 따분한 것이 된다. 젊은 시절은 다르다. 혼자든 둘이든, 어디를 가든 마음껏 즐길 수 있다.

96p 나는 옛날부터 내가 정말 따분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어. 나는 어렸을 적부터 정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였거든. 늘 주위에 틀 같은 것이 보이고, 거기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려고 주의하면서 살아왔지. 언제나 눈 앞에 가이드라인 같은게 보여. 친절한 고속도로 같은 것이지. 그 지시대로만 쫓아가면 길을 잘못드는 일이 없지. - 중략 - 문제라 할 만한 문제는 아무것도 없었지. 하지만 나는 내가 살고있는 의미 같은 것을 제대로 포착할 수가 없었어. 성장함에 따라 그런 어정쩡한 기분은 점점 더 강렬해졌지. 나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그걸 모르겠는거야. 올에이 증후군이지.

<잠>

154p 나는 잠의 테두리 같은 것을 손가락 끝으로 어렴풋하게 느낀다.

156p 시계가 때를 새기는 소리를 들으며 밤이 조금씩 깊어졌다가 다시 옅어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곤 했다.

205p 중요한 것은 집중력이다. 집중력이 없는 인생 따위는 눈만 반짝 뜨고 아무것도 보지 않는 상태나 다름없다.




해변의 카프카(상)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문학사상 | 2010-04-0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동양의 순문학 소설가에서 세계적 베스트셀러 소설가로 성장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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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문학사상 | 2010-04-0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동양의 순문학 소설가에서 세계적 베스트셀러 소설가로 성장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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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의 삶, 행동, 사고방식이 어쩐지 매력적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이야기 자체도 흡입력 있지만, 간결하게 적혀져 있는 짧막한 문장들의 연속이 아동틱하지 않을 수 있다는게 신기하다. 

그래도 몰아서 읽으면 왠지 다 비슷해_


- 어렸을 때부터 나는 언제나 도서관이나 독서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린아이가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을 때 갈 수 있는 장소란 한정되어 있다. 다방에도 들어갈 수 없고 영화관에도 들어갈 수 없다. 결국 남은 장소는 도서관 밖에 없다. 입장료도 없고, 어린애가 혼자 들어가도 제지당하지 않는다. 의자에 앉아서 책을 실컷 읽을 수 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자전거를 타고 근처에 있는 구립도서관에 갔다. 휴일에도 대부분의 시간은 그곳에서 혼자 보냈다. 많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나 소설이나 전기 역사 등 거기 있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어린이용 책을 대충 읽고 나자, 일반인 서가로 옮겨가서 어른을 위한 책을 읽었다. 잘 이해할 수 없는 책이라도 어쨌든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파했다. 책을 읽는데 지치면 헤드폰이 있는 부스에 앉아서 음악을 들었다. 음악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거기에 있는 것을 오른쪽부터 차례로 하나씩 들었다. 나는 그렇게 해서 듀크 엘링턴과 비틀스, 레드 제플린의 음악과 만났다.


- 나는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의자에 앉아서 그 방에 나를 길들인다.


- 나는 자유다, 라고 생각한다. 눈을 감고, 내가 자유다, 라는 것에 대해 한동안 생각한다. 그 자유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외톨이라는 사실뿐이다. 혼자 모르는 고장에 와있다. 자석도 지도도 잃어버린 고독한 탐험가처럼. 자유란 이런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 조차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만둔다.


- 열람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서 다시 버턴판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계로 돌아간다. 그러자 주위의 현실세계가 영화화면이 페이드아웃 되는 것처럼 조금씩 사러져간다. 나는 나 혼자가 되어 페이지 사이의 세계에 몰입해 간다. 나는 그 감각을 무엇보다도 좋아한다. 


- 아시다시피 벼룩은 골치아픈 존재라서, 한 번 옮으면 좀처럼 없어지지를 않거든요. 나쁜 습관하고 똑같다니까요.


- 내 인생의 선택사항에는 없다.


- 하지만 하나만은 말할 수 있지. 요컨대 어떤 종류의 불완전함을 지닌 작품은 불완전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 적어도 어떤 종류의 인간의 마음을 강렬하게 끌어당긴다는 거야.


- 인간은 이 세상에서 따분하고 지루하지 않은 것에는 금세 싫증을 느끼게 되고, 싫증을 느끼지 않는 것은 대개 지루한 것이라는 걸. 그런 거야. 내 인생에는 지루해할 여유는 있어도 싫증을 느낄 여유는 없어.


- 모든 것은 상상력의 문제다. 우리의 책임은 상상력의 가운데서 시작된다. 그 말을 예이츠는 이렇게 쓰고 있다. In dreams begin responsibilities. 그 말대로다. 거꾸로 말하면, 상상력이 없는 곳에 책임은 발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아이히만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 음악은 물에 쓸려 흐르는 모래 속에 삼켜져 버리듯 그대로 사라지고 만다. 헤드폰을 벗어놓자 침묵이 들린다. 침묵이란 귀에 들리는 것이다. 나는 그 이치를 안다.


- 내가 원하는 만큼 오래오래 여기에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나는 생각한다. 읽고 싶은 책은 서가에 얼마든지 꽂혀있고, 식료품 재고도 충분하다. 그러나 여기가 한 때의 통과지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나는 가까운 시일 안에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곳은 너무나도 평온하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너무나도 완벽하게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그것은 지금의 내게는 아직 가질 수 없는 것들이다. 아직 너무 이르다. 아마도.


- 자연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부자연스러운 것이고 평온함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위협적인 거야. 그 같은 배반성을 잘 받아들이려면, 그 나름의 준비와 경험이 필요해. 그러니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리로 돌아가는 거야. 사회와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도시로 돌아가는 거야.


- 다무라군, 우리 인생에는 되돌아 갈 수 없는 한계점이 있어. 그리고 훨씬 적기는 하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한계점도 있지. 그런 한계점에 이르면 좋든 나쁘든 간에 우리는 그저 잠자코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는거야.


- 사에키씨는 살짝 미소 짓는다. 그 미소는 잠시 그녀의 입가에 여운을 남긴다. 그것은 움푹 파인 곳에 마르다 남아 있는 여름날 아침의 더위와, 먼지를 가라앉히려고 뜰에 뿌려놓은 물의 흔적을 연상케 한다.


- 순수한 현재라는건 미래를 먹어가는, 과거의 붙잡기 어려운 진행이다. 사실은, 모든 지각은 이미 기억이다. by 앙리 베르그송


- “신이란게 어떻게 생겼고, 어떤 일을 하고 있지?” “나는 그런 것은 잘 모르지만, 아무튼 신은 신이라구요. 온갖 곳에 신이 있어서 우리가 하는 일을 보고 있다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신 다구요.” “그렇다면 축구 심판 아냐?”


- 아무도 없는 아침의 도서관에는 무언가 감동적인 것이 있다. 모든 말과 사상이 거기서 조용히 쉬고 있다.


-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힘으로 살아나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기 위해선 강해져야 합니다. 무리에서 외따로 떨어진 까마귀나 같죠. 그래서 저는 카프카라는 이름을 저에게 붙였습니다. 카프카란 체코 말로 까마귀라는 뜻입니다.


- 무언가를 경험하고, 그것에 의해 우리 내부에서 무언가가 일어납니다. 화학작용 같은 것이지요. 그리고 그 후에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점검하고, 거기에 있는 모든 눈금이 한 단계 위로 올라간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의 세계가 한 단계 더 넓어졌다는 것을요. 


- 착각이라는 거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면 할수록 더 크게 부풀어 올라 더욱 확실한 형태를 갖게 마련이다.


- 인간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정말로 무게를 갖는 것은,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이다, 하고 청년은 생각했다. 어떻게 죽느냐에 비한다면 어떻게 사느냐 같은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람이 어떻게 죽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역시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 침묵이 너무 깊어서, 귈르 ㄹ기울이면 지구가 회전하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았다.


- “말로 설명해도 올바로 전달되지 않는 건 아예 말하지 않는 게 제일 좋지.” “가령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럴까요?”하고 나는 반문한다. “그래. 설령 자기 자신에게도 말이야. 자기 자신에게도 아마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게 좋을 거야.”


- “우리는 모두 여러 가지 소중한 것을 계속 잃고 있어. 소중한 기회와 가능성, 돌이킬 수 없는 감정. 그것이 살아가는 하나의 의미지. 하지만 우리 머릿속에는, 아마 머릿속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을 기억으로 남겨두기 위한 작은 방이 있어. 아마 이 도서관의 서가 같은 방일거야. 그리고 우리는 자기 마음의 정확한 현주소를 알기 위해, 그 방을 ㅜ이한 검색 카드를 계속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지. 청소를 하거나 공기를 바꿔 넣거나, 꽃의 물을 바꿔주거나 하는 일도 해야하고. 바꿔 말하면, 넌 영원히 너 자신의 도서관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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