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의 붐을 일으켰던 영화.
루드비코의 만화 영화라는 웹툰에서 이 영화가 가지는 의의를 가장 잘 얘기해주고 있는 듯 하다.
요즘 남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컨텐츠들이 인기인 것 같다.
결혼 적령기가 늦어지고, 경제력은 생기면서 남자들의 로망 실현의 시간 및 여유가 많아지는 것이 그 이유가 아닌가 싶다.
과거, 억센 삶을 살았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신사'로 오늘날의 남자들의 모습이 많이 바뀐 것이다.
신사의 품격이 미중년들이 그득 나온다고 해서 여성을 위한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드라마는 남자들을 위한 드라마이다.
평생을 함께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벗이 넷이나 있으며,
아름다운 첫사랑이 등장하고,
애교 만점의 어린(?!) 여자 캐릭터가 대쉬하며,
청담동의 몇 블럭을 소유한 부인이 등장하기도 하는데다,
사랑스럽고 열심히 사랑할 줄도 알고 개념까지 찬 여자주인공이 있으니 말이다.
무튼 건축학개론 역시 남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 중 대표적인 작품이다.
한동안 잊고 지낸 첫사랑이 나타나고, 과거의 기억들을 아련히 반추해보는.
정말 마음에 드는 점은,
남자의 찌질한 과거를 콕 꼬집어 냈다는 것이다.
혼자서 미화했던 기억이 사실 알고보면 혼자 속으로 끙끙 앓고 찌질했었던 자신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기억이라는 것을 상기시켰던 거지.
'너 혼자만 그랬던게 아니다. 여기 봐라. 수지를 두고도 찌질하지 않았느냐.'고 말해주는 느낌이랄까.
'에-이 저 답답한 눔' 하면서 영화를 봤겠지만 뜨끔했을 사람이 한 둘을 아니리라 짐작해본다.
중간에 불친절하게 뚝뚝 끊기는 것들이 많지만, 잊을 수 없는 장면들 역시 많은 영화다.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납득이의 대사들.
예를 들자면, 싱숭이 생숭이 라거나. 공부 열심히 하고 있냐는 질문에, "야.. ㅅㅂ 재수하는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내가 공부까지 열심히 해야겠냐.' 라거나, "어뜨카지-? 너-?" 같은 대사들.
술에 취한 채로 부축되어 방으로 들어가던 장면에서는 정말 안돼! 하고 소리 지르고 싶을 정도 였으니..
엄태웅의 투박하고 단단한 캐릭터와 이제훈의 절절한 감정라인, 조정석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어우러져 잔잔하고 뻔한 이야기 속에서도 톡톡하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찌질한 과거에 대한 면죄부 아닌 면죄부를 주는 영화. 심심할 때, 감성 돋을 때 보시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