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카페는 단순히 사람들을 만나 차를 한 잔 하는 곳에서 벗어나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공부를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며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떠나보내기도 한다.

연구실에 앉아있다가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카페로 도망쳐 나왔는데 

많은 그림쟁이들이 왜 카페를 선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곳은 참 다양한 삶의 모습을 손쉽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마주할 수 있다. 

정확하게는 마주한다기 보다는 엿듣기이지만.

오늘만해도 내 뒤에는 성경 공부를 하던 여대생들이 있었고, 오른쪽 테이블에는 헤어지는 연인들이 2시간동안 얘기를 나누는 중이다.

크고 작은 테이블들 위에 놓여진 노트북들은 건축 설계, 미술, 공학,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활약을 하고 있고 엔터테인먼트 역시 빠지지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뒷 테이블의 주인이 바뀌자 이번엔 스킨 스쿠버 강의가 이어진다.

백색 소음을 헤집고 나와 귀를 파고 드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사람의 관심사는 정말 다양하구나 싶다.

몇 가지는 내 관심사의 폭을 넓혀주기도 한다.

카페를 찾는 또다른 이유는 집중을 하기 위한 장소로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주변의 잡다한 소음은 (대화나 식기를 달그락 거리는 소리, 혹은 의자를 넣었다 빼는 소리까지) 일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기 십상인데,

신기하게도 이 방해를 한 번 이겨내고 나면 겉잡을 수 없는 집중 상태에 들어간다. 

이 때 몰입은 적어도 두 시간은 지속되는데 고요한 환경에서 이룬 몰입상태보다 훨씬 더 밀도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주워듣기로는 이러한 카페 소음은 실제로 생산성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으며, 

맥 앱 중에는 이런 소음을 일부러 만들어내는 Coffitivity라는 앱이 있을 정도다.

한 때, 커피값이 내가 감당하기에 부담스러웠을 때, 단지 커피 가격만을 생각했을 그 때, 카페에 가는 것을 사치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예측할 수 없는 매력, 혹은 소재가 가득한 보물창고 같은 곳임은 물론 도서관과도 같은 곳이 되었다.




 

 

여차친구 부모님 댁을 방문하기 위해 난생 처음 몰아보는 차를 타고 한시간 이십분 여를 달렸다. 요즘들어 부쩍 운전의 필요성을 느끼는 터라 운전을 연습할 시간도 차도 없겠다 싶어 무리 아닌 무리를 것이다. 운전 연수를 자처하신 아버지께서 옆에 타고 계셔 없이 무사히 도착했다. 새삼 운전은 숙련의 문제라는 깨닫기도 했고, 나름 재미도 붙여 구체적으로 차를 계획을 세우기까지 했다. 생각해보니 차가 없으면 불편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여자친구 부모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는 기차를 탔다. 자리를 찾아 앉아서 가고 있는데 좌석에 입석 표를 끊은 듯한 연인이 서성였다. 창측에는 이미 명이 앉아있었고 다른 객실은 이미 만석이라 빈자리가 하나뿐이었다. 한명은 서서 밖에 없었고 남자는 여자를 앉혔다. 자리에 잠깐 앉아있던 여자는 혼자만 앉은 것이 미안했는지 남자를 계속 바라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앉은 10분도 되지 않아 일어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이칸에 앉아서 가자. 아파서 이렇게 못가겠어!"  

남자는 거듭 괜찮다고 말리다가 단호한 여자의 태도에 머쓱해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복도를 걸어가는 둘의 표정은 티끌한 없는 미소가 가득했다.

 

'아이고 불편할텐데. 그래도 둘이 함께 있으니 좋은가보네' 하고 생각하다 문득 괜히 이제 차를 찾기 시작하는, 차가 없이는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나이 먹은건가 싶었다. 하지만 지난 강릉 여행을 떠올려보며 '우리도 역시' 하며 웃었다.

 

어떠한 것도 끼어들 여지가 없는 연인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거구나. 우리의 모습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부모님과의 만남이 끝나고 기차역으로 걸어들어오는 길에 느껴졌던 여자친구의 시선을 떠올려본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그러하다. 기분 좋은 밤이다.




 

 

 

기차 안, 앞자리의 아이에게 게임을 그만하라며 다그치는 어머니의 손에 쥔 핸드폰에 포코팡 점수 결과가 떠있다.

한참을 잔소리한 뒤 아이는 폰을 내려놓은 모양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게임하는 소리가 또 들려 돌아보니 웬걸.

아이가 아니라 어머니께서 신기록 수립에 매진 중이셨다.

아이는 뭐라고 생각할까.

 

언제고 아이에게 책을 읽히고 싶으면 부모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적확한 방법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체감하니 더욱 실감이 난다. 

나중에 아이를 가지게 되면 공부는 못해도 좋지만 책 읽는 즐거움을 일찍 알려주고 싶다. 

그 때 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는 확실하다.

새삼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서울역 푸드코트에 있는 화장실은 그 어느 곳 보다도 정치에 대한 논쟁이 가득한 곳이었다.

지난 대선 후보 몇 명에 대해 고발하는 글들이 군데군데 보였고, 전 대통령과 지금의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들도 적혀있었다.

현재의 야당을 비판하는 격앙된 글들이 벽 여기저기에 휘갈겨 쓰여 있었고, 그리고 이 글의 야당 부분이 여당으로 덮어 쓰여 있기도 했다.

 

물론 사람 장기를 급하게 구입하시는 분들과 남자한테 참 좋은 약을 파는 분들은 빠지지 않았다.

 

이러한 외침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비판의 기준이 정치를 잘 했느냐 민생을 잘 돌보았느냐가 아니라 갖은 추문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왜 정치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면 늘 이런식일까 하는 생각에 잠깐 멍해졌다.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몰라서일까, 아니면 대상이 무조건 싫어 어떻게든 비난하기 위해서일까.

제대로 된 정보도 아닌 것들로 이들이 이렇게 소리치고 분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다 문득 우리가 정치에 대한 정보를 접하는 데 있어 생각 이상으로 생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텔레비전과 신문 (웹이든 종이든)이 일반인에게는 거의 전부일텐데 그들의 행태는 이번 세월호 사고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특히 공영방송의 보도 작태는 가관이었다.

예전의 언론과 지금의 언론은 입지가 (적어도 스마트 기기들을 다루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면) 많이 다르다.

이제 정보는 broadcasting 에 그치지 않는다.

전하지 않으려 했던 정보나 잘못된 정보, 왜곡된 정보들은 도처에 깔린 전문가들이나 경험자, 심지어 당사자에 의해 수정되고 정정된다.

이러한 정보들이 전달되는 속도는 SNS와 각종 카페, 블로그, 인터넷 뉴스들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간다.

궁금하고 모호한 것들에 대해 조사하는데 드는 노력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어들었고, 이 사실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데 드는 비용 역시 크게 줄었다.

개인이 지인에게 broadcasting 하는 데에는 SMS 도 전화도 필요없다. SNS에 글을 하나 올려도 되고 단체 대화방에 링크만 던지면 된다.

돈은 물론 시간도 거의 들지 않는다.

 

문제는 정보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양질의 정보 뿐만이 아니라 쓰레기라 불러도 과하지 않은 정보들 역시 우리에게 너무 쉽게 그리고 많이 노출된다.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돌 때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말이 전해지면서 각색되기도 하고 있지도 않은 사실이 사실인 양 둔갑하기도 하고 전체에서 부분의 부분만 때어와 그것이 전체인 양 부풀려지기도 한다.

내 머리가 더 크기 전에 이런 정보의 진창속에 빠졌다면 내 가치관이 어떻게 잡혔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런 시국에 필요한 건 사고하는 능력이다.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허구인지 판단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범람하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휩쓸려 다닐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정보들을 접하고 분류하고 가려낸 뒤 자신만의 결론을 내는 연습을 부던히 해야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익숙해져야 이 난류 속에 자신이 헤엄쳐갈 물길이 보이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이고 접하기 쉬운 방법은 역시 독서가 아닐까 한다.

정확히 말하면 독수 후 사유하는 시간을 가진 뒤 그 생각을 적어내려가는 과정이다.

 

세상이 발전했음에도 정보 전달 매체가 달라졌음에도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수련은 지식이 활자를 통해 전파된 이후로 변함이 없어 보인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하기 싫던 독후감 쓰기를 이제는 내가 필요해 하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말 그대로 세상이 어지럽다고 느껴지는 요즘, 많은 이들이 정치가 실제 내 삶을 영위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느껴지는 요즘,

굵은 매직으로 도배된 화장실 벽을 보며 어지러웠던 머릿속을 이렇게나마 정리해 본다.



​메모를 언제부턴가 의식적으로 하고 있다. 

잠깐잠깐 지나가는 생각들이 아깝기도 하고, 글쓰기 능력을 키우는 데 메모만한 것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나서부터 

습관으로 들여보자고 다짐했다.

메모 패드를 장만했고, 맥에도 앱을 사서 틈틈히 적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메모들을 정리해두고 싶어졌다.

 

성격 상 연습장들을 다 쌓아두지도 않기도 하거니와

이런 메모들을 글로 옮겨쓸 때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살을 더 붙이고 지워 없애는데

이 과정이 엄청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글들을 매번 일기장에다 쓰자니 일기가 일기가 아닌 것 같고 따로 또 노트를 마련하자니 역시나 보관하는 성격이 아니고 해서

블로그에 새로운 카테고리를 하나 열었다. 


메모한 것들을 정리해 써내려가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보고 수정할 수 있는 그런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보관하기로.

 

집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 이런 저런 생각들을 끄적여 내려가다가 결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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