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푸드코트에 있는 화장실은 그 어느 곳 보다도 정치에 대한 논쟁이 가득한 곳이었다. 지난 대선 후보 몇 명에 대해 고발하는 글들이 군데군데 보였고, 전 대통령과 지금의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들도 적혀있었다. 현재의 야당을 비판하는 격앙된 글들이 벽 여기저기에 휘갈겨 쓰여 있었고, 그리고 이 글의 야당 부분이 여당으로 덮어 쓰여 있기도 했다.
물론 사람 장기를 급하게 구입하시는 분들과 남자한테 참 좋은 약을 파는 분들은 빠지지 않았다.
이러한 외침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비판의 기준이 정치를 잘 했느냐 민생을 잘 돌보았느냐가 아니라 갖은 추문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왜 정치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면 늘 이런식일까 하는 생각에 잠깐 멍해졌다.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몰라서일까, 아니면 대상이 무조건 싫어 어떻게든 비난하기 위해서일까. 제대로 된 정보도 아닌 것들로 이들이 이렇게 소리치고 분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다 문득 우리가 정치에 대한 정보를 접하는 데 있어 생각 이상으로 생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텔레비전과 신문 (웹이든 종이든)이 일반인에게는 거의 전부일텐데 그들의 행태는 이번 세월호 사고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특히 공영방송의 보도 작태는 가관이었다. 예전의 언론과 지금의 언론은 입지가 (적어도 스마트 기기들을 다루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면) 많이 다르다. 이제 정보는 broadcasting 에 그치지 않는다. 전하지 않으려 했던 정보나 잘못된 정보, 왜곡된 정보들은 도처에 깔린 전문가들이나 경험자, 심지어 당사자에 의해 수정되고 정정된다. 이러한 정보들이 전달되는 속도는 SNS와 각종 카페, 블로그, 인터넷 뉴스들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간다. 궁금하고 모호한 것들에 대해 조사하는데 드는 노력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어들었고, 이 사실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데 드는 비용 역시 크게 줄었다. 개인이 지인에게 broadcasting 하는 데에는 SMS 도 전화도 필요없다. SNS에 글을 하나 올려도 되고 단체 대화방에 링크만 던지면 된다. 돈은 물론 시간도 거의 들지 않는다.
문제는 정보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양질의 정보 뿐만이 아니라 쓰레기라 불러도 과하지 않은 정보들 역시 우리에게 너무 쉽게 그리고 많이 노출된다.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돌 때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말이 전해지면서 각색되기도 하고 있지도 않은 사실이 사실인 양 둔갑하기도 하고 전체에서 부분의 부분만 때어와 그것이 전체인 양 부풀려지기도 한다. 내 머리가 더 크기 전에 이런 정보의 진창속에 빠졌다면 내 가치관이 어떻게 잡혔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런 시국에 필요한 건 사고하는 능력이다.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허구인지 판단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범람하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휩쓸려 다닐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정보들을 접하고 분류하고 가려낸 뒤 자신만의 결론을 내는 연습을 부던히 해야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익숙해져야 이 난류 속에 자신이 헤엄쳐갈 물길이 보이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이고 접하기 쉬운 방법은 역시 독서가 아닐까 한다. 정확히 말하면 독수 후 사유하는 시간을 가진 뒤 그 생각을 적어내려가는 과정이다.
세상이 발전했음에도 정보 전달 매체가 달라졌음에도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수련은 지식이 활자를 통해 전파된 이후로 변함이 없어 보인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하기 싫던 독후감 쓰기를 이제는 내가 필요해 하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말 그대로 세상이 어지럽다고 느껴지는 요즘, 많은 이들이 정치가 실제 내 삶을 영위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느껴지는 요즘, 굵은 매직으로 도배된 화장실 벽을 보며 어지러웠던 머릿속을 이렇게나마 정리해 본다. |
화장실 벽 낙서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
2014. 10. 21. 1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