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동하라.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좌우될 필요는 없다.

독립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면 타인의 영향 아래에 놓이게 된다. 타인의 생각 속에서 늘 살아야 한다면 이것은 육체가 부자유한 것보다 훨씬 더 나쁜 노예 상태이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中, 톨스토이




- 단편집인 줄 모르고 샀다. 한 편 한 편이 끝날 때마다 장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잘 읽힌다. 하루키의 소설 중에서는 자극이 덜한 편이었지만 역시나 죽음, 섹스, 음악, 음식, 술, 있어보이는 말들이 적절하게 버무러져 있다. 

- '카프카'의 '변신'을 모티브로 한 단편도 재미있었고, '천일야화'를 따온 단편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단편에서 '여자 없는 남자들'에 대한 정의와 설명은 참 인상 깊었다.

  분명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을 잃은 후에 세계가 묘하게 틀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후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 그리고 한번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어버리면 그 고독의 빛은 당신 몸 깊숙이 배어든다. 연한 색 카펫에 흘린 레드 와인의 얼룩처럼. (...) 그 얼룩을 지우는 건 끔직하게 어려운 작업이다. 시간과 함께 색은 다소 바랠지 모르지만 얼룩은 아마 당신이 숨을 거둘 때까지 그곳에, 어디까지나 얼룩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얼룩의 자격을 지녔고 때로는 얼룩으로서 공적인 발언권까지 지닐 것이다. 당신은 느리게 색이 바래가는 그 얼룩과 함께, 그 다의적인 윤곽과 함께 생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 설령 그후에 다른 새로운 여자와 맺어진다 해도, 그리고 그녀가 아무리 멋진 여자라고 해도 (아니, 멋진 여자일수록 더더욱), 당신은 그 순간부터 이미 그녀들을 잃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 왜냐하면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는 게 어떤 일인지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 여자 없는 남자들에게 세계란 광대하고 통절한 혼합이며, 그건 그대로 고스란히 달의 뒷면이다.

'여자 없는 남자들' 中,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책은 음악 정리하는 맛을 빼먹을 수 없다.

특히 이번 단편집 중 '기노' 에서는 오래된 재즈 음악들이 잔뜩 소개되는데,

재즈바를 하다가 소설가가 된 그의 진가는 이런 곳에서 제대로 발휘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베토벤 현악 사중주 모음 Beethoven String Quartet 



Joshua Fit the Battle of Jericho by Coleman Hawkins



Art Tatum Piano Solo 모음집



Georgia on My Mind by Billy Holiday



Moonglow by Erroll Garner






I Can't Get Started by Buddy DeFranco








화양연화 (2013)

In The Mood For Love 
7.8
감독
왕가위
출연
양조위, 장만옥, 소병림, 반적화, 뇌진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프랑스, 홍콩 | 97 분 | 2013-11-28
글쓴이 평점  


포스터 중 어떤 것도 '화양연화'의 전체적인 느낌을 잘 살리는 것이 없어 그나마 고른 것이 이것.

강렬한 색감과 사운드 트랙, 그리고 기묘한 호흡과 구도로 중무장한 이 영화는 스토리만 따지자면 '불륜' 영화다. 

하지만 그 어떤 불륜 영화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 영화는 요즘 영화에 판 치는 '살색' 이 없다는 것.

정사 장면은 커녕 키스장면 하나 없는 이 불륜 영화가 주는 아련함은 'Nat King Cole' 의 'Quizas Quizas Quizas' 와 함께 극에 달한다.

원색으로 점철된 색감과 몸에 타이트하게 붙은 장만옥의 의상, 양조위의 눈빛과 담배연기는 정사장면 없이도 충분히 관능적이다.

'아비정전'의 '발 없는 새'처럼 '화양연화'에 있어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는 바로 비밀을 나무에 털어 넣고 진흙으로 입구를 막았던 옛 사람들의 이야기 이다.


"모르죠? 옛날에 뭔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면 어떻게 했는지. 산에 가서 나무를 하나 찾아 거기에 구멍을 파고는 자기 비밀을 속삭이곤 진흙으로 봉했다 하죠.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


나무로는 그 큰 마음을 다 담을 수 없어서였을까. 떳떳할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수년이 지나도 추스르지 못하고 캄보디아 사원의 돌탑에 그 마음을 한참이나 털어놓고선 진흙으로 막아둔다.

십년 전에 보고 다시 보는데, 그땐 보이지 않던 감정선들이 더 잘 보였다.

ost 를 구매하려고 네이버 뮤직을 찾아보니 저작권이 허락되지 않은 모양이다.

한동안 계속 듣고싶을 것 같은데 이를 어쩌나...


다음주엔 '2046'을 보자. 이것도 십년만에..





아비정전 (2009)

Days Of Being Wild 
7.8
감독
왕가위
출연
장국영, 유덕화, 장만옥, 유가령, 장학우
정보
드라마 | 홍콩 | 94 분 | 2009-04-01
다운로드 글쓴이 평점  



액션 영화로 유명했던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 이 극장에 걸렸을 때,

관객들의 대부분은 액션영화를 기대하고 갔다가 지독히도 정적인 이 멜로영화에 환불을 요구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종잡을 수 없는 장국영의 캐릭터와 그가 내뱉은 대사.

유덕화의 묵묵함과 장만옥의 유리같은 인물들이 시종일관 저 녹색의 어둑어둑한 색채 속에서 묘한 구도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마지막 1분의 양조위는 정말, 서른 평생 피지 않았던 담배를 배울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원래 후속작이 예정되어 있어서 양조위가 그렇게 출연한 것인데, 사상 초유의 환불 사태에 영화는 상영관에서 조기에 내려졌다고 한다.

후에 작품성이 알려지고, 양조위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만든 영화가 바로 '화양연화'

그리고 '화양연화'는 다시 '2046'으로 이어진다.


이 시리즈에서는 꼭 하나씩 굵직한 역할을 하는 '이야기'가 있다.

'아비정전' 에서는 아비(장국영)가 늘 이야기 하는 '발 없는 새'에 대한 이야기 이다.

"세상에 발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쉬곤 한대. 평생 딱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수작거는 말로나 치부했지만, 아비는 정말 그렇게 살다가 가버렸다.


다시 볼 땐 왠지 느낌이 다를 것 같은 이 영화, 두어번은 더 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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