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al Life/Books
- 7년의 밤 - 정유정 2014.04.15
- 행복한 그림자의 춤 - 앨리스 먼로 2014.02.08
-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 무라카미 하루키 2013.12.31
- 2013년 결산! 2013.12.04 2
- 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 2013.10.24
7년의 밤 - 정유정
행복한 그림자의 춤 - 앨리스 먼로
2014년 첫 번째 책을 드디어 다 읽었다.
심오한 내용이 아닌 단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고리타분한 번역 덕분이다.
번역은 거의 직역에 가깝게 되어 있으면서 단어 선택은 정말 잘 사용하지도 않는 단어들로 갖다 붙인 느낌이다.
물론 나의 국문 어휘력이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문제는 책을 읽다 보면 원본이 가늠이 되었는데,
원문은 간결하고 쉬웠을 것 같다는 거다.
그래서 더 아쉽고 아쉽다.
화자가 느끼는 감정을 정말 세세하게 묘사하는데 대부분의 화자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공감할 정도로 디테일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건조하고 간결한 문체로 세련되게 묘사를 하는 반면,
앨리스 먼로는 감정을 공유할 수 있게 묘사를 하는데, 영어를 제대로 공부해서 꼭 원문으로 읽어보고 싶을 정도다.
이번에 노벨 문학상을 타고 국내에도 더 많이 알려지면서
번역 된 두 권의 책이 엄청 많이 팔리고 있는 것 같은데,
'디어 라이프'도 얼른 읽어봐야겠다.
그건 번역 제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읽다가 소설에서 평행 세계관을 처음 접목시킨 책이라 자신의 문학 세계를 더 이해해보고 싶다면 먼저 추천하고 싶다던 하루키의 말에 사서 읽기 시작했다. 내가 읽은 하루키의 작품들은 비교적 최근 작품들이었는데,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확실히 젊을 때 쓴 책이라 최근의 작품과는 다르게 러프한 구석이 많다.
나는 하루키의 장편 소설 보다는 에세이나 단편을 더 좋아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장편 소설에서의 주인공들이 다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다.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성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캐릭터들이 나름의 기준을 가지는 생활 습관을 고수하며 강직하게 살아간다. 그들의 운동 능력이나 요리 실력, 그리고 음악 취향은 두 말할 것 없이 클래식하며 센스 넘친다. 어쩌다 한 번 읽으면 재미있지만 몰아서 보면 물리는 경향이 있다. 조미료 같달까. 그런 하루키의 초창기 작품을 읽으려는 시도는 아마 이 물림이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
책의 내용은 역시나 또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게 여겨져야 하는 독특한 상황 구성으로 전개된다. 아마 작품에 대한 해설이 섞여있는 서평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이 단순한 판타지 물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원래 해설이 담겨 있는 글을 책을 다 읽기 전에는 - 아니 혹은 읽고 난 후에도 - 잘 읽지 않는 편인데, 그 이유는 책을 읽을 때 그 해설에 편향되어서 책을 읽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이 주변은 커녕 스스로도 돌아볼 틈 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 대한 이야기 라는 해설을 보지 않았다면 이렇게나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주인공이 겪어내는 일들은 앞서 말한 현대인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데, 복잡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정신없이 살아내던 주인공은 갑자기 현실과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한다. 책을 읽어 내려 가다가 주인공의 처지에 나도 모르게 공감하게 되고, 과연 나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지금의 삶에서 떠나게 된다면 과연 남은 시간 동안 무엇부터 할 것인가, 놓치고 살았던 것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자문하게 된다. 침착하고,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주인공은 '탈출구'로 머릿속 세계인 '세계의 끝'을 그린다. '세계의 끝'은 현실과는 다른 유토피아를 꿈꾸어 만들어 두었지만, 이 '세계의 끝' 은 흥미롭게도 '마음'이 없을 때나 실현 가능한 것임을 '세계의 끝'에서 깨닫게 된다. 결국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을 책 두 권으로 설명하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 과정이나 깨달음에서 느끼는 디테일함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느끼'게 해준다.
한정된 시간의 모습을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지금 내가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도 자문하게 했다. 멈추어 있는 것 같을 때에도 시간은 시시각각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밀도가 높아진 시간 위에선 사소한 것들이 다 새로운 발견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나에게 할당된 이 소중한 시간이 나 이외의 요인에게 좀먹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간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든지 간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의미와 크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서른을 앞드고 시간에 대해 조금씩 민감해져가는 요즘, 내가 보내는 시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 이 책을 만나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어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만나는 또 다른 즐거움을 느꼈달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품 속에서 설계한 평행 세계들은 ‘뫼비우스의 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본의 한 쪽 면은 현실 세계가 진행이 되고, 같은 위치의 반대쪽 면은 기묘한 세계가 진행된다. 두 리본은 서로의 반대쪽 세계에 대한 힌트를 주고 받으면서 진행이 되고, 중후반부에는 그 리본이 맞닿는데 그 맞닿는 방향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한 번 틀어진 채 닿는 것이다. 처음 1Q84를 읽으면서 (2권까지) 느꼈던 재미는 바로 여기서 오는 것이었다. 하루키의 음악이나 요리, 문학적 취향은 차치하고라도, 이렇게 연결 장치들을 마련해놓은 변태적인 치밀함이란 정말.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두 세계에 푹 빠지면서 읽어서 재미있었고, 내가 삶을 살아가며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책이었다.
2013년 결산!
읽은 책 리스트를 2012년 12월 부터 썼으므로,
2013년 결산을 지금 하려고 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독서량이 모기 눈물 만큼도 안되던 내가 2013년에는 권수로만 치면 한 달에 두 권을 읽는 기염을 토했으니..!
얼른 책 읽는 게 몸에 딱 베였음 좋겠다.
읽은 책들
1.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 기욤 뮈소
2. 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3. 아웃라이어 - 말콤 글래드 웰
4. 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 - 에카르트 폰 히르슈하우젠
5.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 하야마 아마리
6. 빅 픽처 - 더글라스 케네디
7. 원데이 - 데이비드 니콜스
8. 스노우맨 - 요 네스뵈
9. 무국적 요리 - 루시드 폴
10. 체호프 단편선 - 안톤 체호프
11. 로봇 다빈치, 꿈을 설계하다 - 데니스 홍
12. 편지 - 츠지 히토나리
13.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상, 중, 하 - 아고타 크리스토프
14. 끌림 - 이병률
15. 적의 화장법 - 아멜리 노통
16. 도쿄의 서점 - 현광사 MOOK
17. 천국과 지옥의 이혼 - C.S. 루이스
18.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 무라카미 하루키
19. 나를 바꾸는 글쓰기 - 송준호
20. 관점을 디자인하라 - 박용후
21. 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
22.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 2 - 무라카미 하루키
내년 목표는 일단 올해만큼 읽기,
그리고 사놓은 책들 우선 읽기.
아자아자.
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
산지는 좀 됐는데, 이제야 펼쳐들고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읽었다.
철학박사 강신주가 마음에 울림이 있었던 인문학 저서 48가지를 소개해주는 책으로,
나처럼 인문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인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삶의 어디까지 걸쳐 있는지 체감할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인문학이 어렵다,
어디에 쓸모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