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다가 흥미로운 부분을 읽었다. 바로 아름다움을 '소유'하기 위한 방법에 관한 것인데 영국의 미술, 건축 평론가인 '존 러스킨'을 인용했다. 존 러스킨은 여행지에서 느낀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데생'을 이야기 한다. 단순히 대상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다시 재창조하기 위한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과정은 바로 '관찰'이다. 대상을 느낀대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면밀한 관찰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그 구성 요소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게 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부가적으로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정리된다는 장점이 있다. 이 글에서 사진에 대한 견해는 나와 다르지만 그림에 대한 부분은 크게 공감이 된다.

  작년부터 그림을 본격적인 취미로 삼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의 출발점은 선긋기도 아니고 모작도 아니다. 바로 관찰에서 시작한다. 드로잉 입문과 관련된 서적들을 보면 항상 대상을 관찰하는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잘 그릴 필요는 없으니 되도록 관찰한 것들을 다 표현해내는 것을 그 다음 과제로 제시한다. 이후에는 인상 깊은 부분을 강조하는 것인데, 인상깊은 드로잉들은 바로 이것에서 차이가 난다. 내 수준이 여기까지만 되어도 사실 나는 소원이 없을 듯 한데, 역시나 이 경지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그림을 그리면서 좋은 점은 예전의 호기심을 담아 사물을 보던 습관을 조금이나마 다시 찾았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3학년 즈음이었나, 어머니께서 무언가 궁금하셔서 나에게 물어보셨는데 나는 안궁금해, 몰라, 라고 대합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내가 어렸을 때에는 호기심도 많고 궁금한 건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했는데 변했다 말씀하셨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비슷한 말을 들어 나에게는 자격지심 비슷한 것이 되었다. 호기심이 없는 연구원. 이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젠데, 어떤 현상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면 어떠한 솔루션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 호기심 어린 시선이 돌아왔다. 저거 그려보고 싶은데, 어떻게 그려야 하지, 어떤 방법으로 표현해야 하지 로 시작한 질문들은 대상을 더욱 면밀하게 관찰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림 그리기의 또 다른 좋은 점은 손을 많이 쓰게 된다는 점인데, 나는 컴퓨터로 대부분 작업하는 터라 직접 손으로 끄적일 일이 별로 없었다. 손을 많이 쓰면 두뇌 자극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한데, 손을 자주 쓰게 되면서 손으로 무엇인가를 끄적여 나가는 것에 대한 귀찮음이 없어졌고, 나아가 메모하는 습관과 연구와 관련된 아이디어를 도식홯하는 습관까지 생겼다. 

  단순한 동경에서 시작한 그림이 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과 계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그림을 취미로 권장한다. 연구실에 갖힌 채 단조로운 일상에 활력소가 되어주는 것은 물론, 익숙한 사물들도 다시 돌아보게 하고, 연구를 하는 데 있어서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연습에 이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좋은 취미는 이렇듯 스스로의 발전에 이바지 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취미를 여유가 있을 때나 신경을 쏟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하지만, 독서와 마찬가지로 (독서는 취미가 아니다) 시간을 떼어 취미를 위한 시간을 따로 떼어두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야 자신의 생업에서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고 나아가 삶의 카테고리가 더욱 풍성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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