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p -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진부함이에요. 왜냐하면 우리들 주 ㅇ어느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지요. - 내 일생은 자신과 타인을 감쪽같이 속이기 위한 나날의 궁리 속에서 흘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나는 죽는 순간까지 이런 거짓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무섭습니다.
21p 내 생각에 우리는 아는 것이 거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매일 실수를 저지르고 옳지 못한 짓을 하며 서로 비방하며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겁니다.
67p 그는 이 분 정도 앉아 있다가 죄지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91p 바로 이처럼 사람들의 얼굴이나 말도 삶 속에서 명멸하다 가는 과거 속으로 가라앉아 버리는 것이다. 보잘 것 없는 기억의 자취만 빼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로.
93p 자연으로부터 미적인 취미와 본능ㄹ을 부여받은 이 아가씨들에게 부주의한 옷차림은 오히려 특별한 매력을 가져다 준다.
109p 상식 있는 진실한 인간도 자신의 선의에 반하여 가까운 사람에게 까닭 없이 가혹한 고통을 줄 수가 있는 것이다.
113p 나는 식탁 앞에 앉으면서 나에게 잔을 갖다주는 소녀의 얼굴을 살짝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내 머릿속으로 휘익 바람이 불어오더니 권태며 먼지와 같은 오늘 하루 동안의 찌꺼기들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116p 이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느낌은 묘한 것이었다. 마샤가 나의 마음ㅁ속에서 불러일으킨 것은 욕망도, 열광도, 쾌감도 아니었으며 어떤 달콤하면서도 괴로운 슬픔이었다. 그것은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마치 꿈처럼 모호한 슬픔이었다.
119p 그녀가 그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나의 아픔은 더해갔다. 그것은 소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질투 때문인지, 아니면 이 소녀가 지금 내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영영 내 것이 될 수 없는 타인이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소녀의 흔치않은 아름다움이 지상의 다른 모든 존재들처럼 우연하고 불필요하고 무상한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느끼고 있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나의 슬픔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관조할 때 인간의 마음속에서 불러 일으켜지는 특별한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