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 폴 노래들의 가사를 생각하며, 감성으로 가득한 소설을 본의 아니게(?) 기대했는데 웬 걸.
기발하고 엉뚱한 단편들의 향연.
기존의 문학과는 조금 다른 루시드 폴의 글들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취미로 단편을 써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굳이 출판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아니, 요즘은 전자 출판 때문에 1인 출판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엉뚱하고 재미있는 생각을, 살아가며 느낀 것들을 체계적으로 엮어보는 일을 꾸준히 연습해야지 싶었다.
59p 뾰족한 돌멩이 하나가 스스로 알아서 사라져 준 셈이니 더 잘 굴러갈 것이다, 짐작은 했지만 그게 현실이 되자 요수는 절망할 힘마저 잃었다. 그때 요수는 알았다. 모두에게 절망한다는 건 홀로 절망하고 있다는 뜻이라는 걸.
112p 산이는 언제나 아주 멀리서도 한눈에 야화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야화의 모습이 두 눈에 들어오는 그 기분이 좋았다. 심지어 안녕, 인사만 한 뒤 서로 다른 길을 갈 때, 그 알 수 없는 허전함 마저도 좋았다. 하지만 야화와 하루 종일 이야기를 하거나 같이 논다면 그리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못 하고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았으니까.
158p 두 사람은 만난 지 반년이 지날 즈음 결혼했다. 결혼이라고 해봤자 시청에 함께 가서 서류에 도장을 찍고, 서약을 하는 것, 그게 다였다. 어느 누가 먼저 청혼한 적도 없었다. 결혼식도 반지도 드레스도 사진 촬영도 없었다. 오히려 필요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그리고, 어느 따뜻한 나라로 신혼여행을 간 두 사람은 푸른 천사 문신을 팔목에 함께 새겼다. 둘의 유일한 결혼 선물이었다.
163p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이 중력 때문이라는 거야. 중력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그렇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거스를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 거라구. 그런데 우주 어떤 곳은 말이야. 중력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의 10분의 1밖에 안 된대. 만일 그곳의 중력이 여기의 10분의 1이라면, 그곳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10분의 1이 되겠지? 그래서 더 오래 살 수가 있대. 지금 평균 수명이 백 살에 육박하니까 이 행성에 사는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1천 살이 된다는 거야. 여기서 보낸 10년의 시간이 그곳의 1년이 되는 거라고.
168p 안드레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자신이 마치 썰매에 매달린 산타클로스의 선물꾸러미 같다는 생각 말이다. 어디로 가든, 혹시 아무데도 갈 수 없더라도 모두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274p 우미는 남은 물을 끓여 차를 우렸다. 잔에 찻물을 따르자 차를 따르는 소리가 온 집을 울렸다. 갓 뜯은 봉투 속 찻잎향이 나비처럼 집 안 구석구석을 날며 공기를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