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쭉 읽어 내려갔던 재미있는 소설이다.
주인공과 호흡을 같이 하며 읽었다.
사진에 집중할 땐 같이 집중하기도 하고.
사진을 좋아하는 나에겐 사진 이야기들도 엄청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제대로 사진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불을 다시 지폈다.
- 감수성이 예민한 여섯 살짜리 꼬마를 가장 크게 만족시킨 건 렌즈 뒤에 몸을 숨긴 채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꼬마는 카메라 렌즈를 자기 자신과 세상 사이를 가로막는 벽처럼 사용했다.
- 이제 와서 가장 참기 힘든 게 뭔지 아나? 언젠가 죽는다는 걸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는 거야. 변화를 모색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서거나 다른 생을 꿈꿀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리란 걸 알면서도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인 양 살아왔다는 거야.
- 사진에서는 바로 그런 게 중요하다. 카메라 렌즈를 아주 세련되게 현실의 중개자로 사용하면, 지금껏 본 적 없는 이미지를 얻어낼 수 있다. 최고의 사진은 늘 우연을 통해서 나온다.
- 누구나 인생의 비상을 갈망한다. 그러면서도 가족이라는 덫에 더 깊이 파묻고 산다. 가볍게 여행하기를 꿈꾸면서도, 무거운 짐을 지고 한 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만큼 많은 걸 축적하고 산다. 다른 사람 탓이 아니다. 순전히 자기 자신 탓이다.
- 공간을 채우고, 시간을 채울 것을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 축적되면 인생이 되는 게 아닐까?
-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소멸을 눈가림하기 위해 물질을 축적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축적해놓은 게 안정되고 영원하다고 믿도록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 결국 인생의 문은 닫힌다. 언젠가는 그 모든 걸 두고 홀연히 떠나야 한다.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쥐똥만한 희망과 과거에 대한 집채만한 미련을 가진 주인공이 언제까지 '어쩔 수 없음' 으로 버틸 지는 독자의 상상에 달린 것이겠지만, 이런 전환의 기회를 같이 맛보게 해주었던 매력적인 책이다.